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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인플레이션 적용 기준 영화사 역대 최고의 흥행작

로더리고 2025. 8. 25. 13:57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미국 로맨스/멜로 외 230분 (재) 12세이상 관람가 (재)

 

감독 빅터 플레밍

 

출연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레슬리 하워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앞으로도 여러 번 재개봉될 것이다. 좋다. 문명은 사라졌지만 잊혀진 것은 아니니까.

로저 이버트

 

정말 훌륭한 영화들 중 하나이며, 전 세계 기록을 깨는 박스오피스 사업이 될 운명이다. 제작의 화려함, 제작에 들어간 완벽한 관리와 기술, 훌륭한 출연진과 전문 기술 스태프들의 조합이 어우러져 390만 달러의 왕성한 투자를 정당화하는 연극적 매력을 선보인다.

버라이어티 (★★★★★)

 

대형 스크린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본다는 것은 할리우드가 한때 숭고함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두려움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영화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역사적 서사시극이자 친밀한 드라마로 성공한다.

LA 타임스 (★★★★★)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의 일급 작품이고, 미국인들은 비평가들이 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임지 (★★★★★)

 

정점에 달한 할리우드의 제작능력과 자신감이 빚은 기념비적 걸작

이동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단순한 역사적 드라마를 넘어, 영화 예술의 신화를 구축한 작품입니다.

 

마거릿 미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 영화는 남북 전쟁과 그 여파 속에서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강인한 여성 스칼렛 오하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939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그 시대의 영화 기술, 연기,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재정의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빅터 플레밍 감독의 연출,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의 열연, 그리고 10개의 아카데미 상 수상은 이 작품이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더욱 견고히 만듭니다.

 

 

 

할리우드의 역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영화 중 하나이며 인플레이션 적용 기준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기도 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찬사는 주로 제작 과정, 기술적 성취, 거대한 스케일에 집중됩니다.

 

이 영화가 영화사에서 가지는 가치는, 새로운 기법이나 심도 깊은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활용해 최고 수준의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완성했다는 점에 있으며 제작 단계부터 전국적인 오디션과 “다시 볼 수 없는 명품”이라는 마케팅으로 작품을 홍보하고 물량공세로 대작을 만들어 고수익을 노린 이 작품의 전략도 향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중적인 반향을 바탕으로 1977년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영화로 선정했고 또한 평론가들이 선정한 1998년 AFI 선정 100대 영화의 영화 중 4위를 차지(2007년 개정판에서는 6위). 그리고 1989년에는 국립영화보관소에 의해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본국인 미국에서는 여전히 대중들이 사랑하는 영화로 영화계의 스테디셀러,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비록 인종차별 이슈가 있으나 2000년대 이후로도 미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국민 영화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니까”

 

남북전쟁 발발 직전, 오하라 가문의 장녀 ‘스칼렛’은 도도한 매력으로 뭇 남성들의 우상이다.

 

그녀가 짝사랑하던 '애슐리'가 친구 ‘멜라니’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고백하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당하고, 이 모습을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레트'에게 들키고 만다.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르는 스칼렛과는 반대로 이미 레트는 거침없는 매력의 스칼렛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전쟁은 남부에 불리해지고

 

스칼렛은 레트의 마차를 타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파란만장한 미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도 잠시, 레트는 여전히 스칼렛의 마음에는 애슐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삶의 모든 것을 뜨겁게 사랑했던 여자 ‘스칼렛’

 

그런 그녀를 운명처럼 사랑했던 남자 ‘레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세기 중반의 남부 미국을 배경으로 남북 전쟁과 그 이후의 재건 시대라는 격동의 시기를 묘사하면서, 당시 사회 구조와 가치관을 사실감 있게 재현합니다.

 

영화는 남부 사회의 몰락과 이에 따른 인물들의 변화를 그리며, 스칼렛 오하라의 고군분투를 통해 개인의 생명력과 의지가 어떻게 역사적, 사회적 굴레 속에서 발현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단순히 남부의 몰락에 대한 개인적인 상실을 넘어, 전통적인 가치관과 갈등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그녀의 역경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와 자아 중심적인 성격은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서사적 축을 형성하며, 관객은 그녀의 여정을 통해 자신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의 투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비안 리는 스칼렛 오하라 역을 통해 완벽하게 캐릭터의 복잡성을 완벽하게 소화해냅니다.

 

한마디로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속 여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캐릭터는 당시 시대에는 드문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며 영화 역사의 아이코닉한 캐릭터로 자리매김 합니다.

 

그녀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당시 사회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현실적인 전략을 추구하며, 그녀의 감정선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녀의 사랑, 욕망,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의 흐름은 단순한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갈등을 내포한 강렬한 내러티브를 형성합니다.

 

비비안 리의 연기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며 스칼렛은 단순히 ‘불행한 사랑에 빠진 여인’으로만 그려지지 않으며, 그녀의 감정 변화와 성장 과정은 영화의 심리적 중심축을 이룹니다. 비비안 리의 세밀한 표정 변화와 내면을 투영하는 연기는 스칼렛이 단순한 캐릭터의 틀을 넘어서, 시대와 사회의 억압 속에서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임을 잘 드러냅니다.

 

 

클라크 게이블의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갈등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스칼렛의 욕망과 갈등을 이해하면서도

 

그녀의 본성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증오, 열정과 냉소가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선으로 그려지며, 결국 이들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진정한 화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그 자체로 영화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정의하며, 관객에게 "사랑의 진정성"을 묻는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그 시대 최고의 기술적 성취의 절정입니다.

 

촬영 감독 레너드 슐만은 전쟁의 참혹함과 남부의 경치, 그리고 스칼렛의 내면 세계를 풍부하게 풀어내며 대규모 전투 장면이나

 

애틀랜타의 소실 장면 등은 당시 영화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웅장함을 선사하며, 그 세밀한 촬영 기법은 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가 기념비적인 만큼 음악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음악은 역대 최고의 영화 음악 중 하나라고 평가받으며 2005년 미국 영화 연구소 AFI 선정 영화 음악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제작자 셀즈닉은 1930년대 초 RKO 픽처스에서 함께 일했던 맥스 스타이너를 선택했습니다. 맥스 스타이너는 <킹콩>, <카사블랑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음악을 작곡했으며 24번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션 되고 3번 수상한 당대 최고의 영화 음악가입니다.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은 영화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키며 그의 서정적인 멜로디는 영화의 감정선을 이끌어가며, 전투 장면에서의 고조된 음악은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특히, 영화의 주제곡인 "Tara's Theme"은 그 자체로 영화의 상징적인 트랙으로 자리잡으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클래식한 가치를 자랑합니다.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은 마거릿 미첼의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판권을 재빨리 확보했고

 

원작자인 마거릿 미첼이 

 

처음 레트 버틀러 역에 꼽은 배우는 바실 래스본이었으나 그는 셜록 홈즈로 유명한 배우로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레트 버틀러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배우였고, 대중들은 압도적으로 클라크 게이블을 원했습니다.

바실 래스본

 

셀즈닉을 비롯한 제작진도 여기에 동의하면서 레트 버틀러 역할을 맡을 배우는 쉽게 결정이 되었는데 정작 클라크 게이블 본인은 대중들의 관심에 부담스러워 했고, 하필이면 바로 직전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해서, 제안을 거절하려 했으나 캐롤 롬바드와 결혼하기 위해 첫 아내에게 지불해야 할 이혼 위자료에 쓸 5만 달러라는 당시에는 막대한 보너스 때문에 결국 수락하였습니다.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은 1938년 2월 비비안 리가 출연한 <Fire Over England>와

 

<A Yank at Oxford>를 본 순간 리를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점찍고 바로 리의 미국 활동을 담당하는 에이전시에 리의 이름을 스칼렛 오하라 후보에 등록시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침 리의 미국 에이전시 대표는 데이비드 O. 셀즈닉의 형제인 마이런(Myron) 셀즈닉이었고 1938년 여름 셀즈닉 형제는 리의 전체 연예 활동에 관해 계약을 맺고 있던 영국 제작자 알렉산더 코다와 협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2월 10일 셀즈닉 형제와 코다는 첫 대면 회의를 가졌는데, 이 날은 마침 애틀랜타가 불타는 장면을 촬영한 날이었며 그 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수차례의 스크린 테스트를 거친 뒤 1939년 1월 13일 리를 스칼렛 오하라로 발표하게 됩니다.

 

 

 

제작사인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처스는 이 영화를 최고의 대작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했습니다.

 

처음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화려하게 만들기로 마음먹은 셀즈닉은 감독 세 명(샘 우드, 조지 큐코어, 빅터 플레밍)에게 영화를 맡겼고 영화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인 애틀랜타 화재 장면은 백 포티에서 촬영되었는데, <킹콩> 등의 영화에 사용되었던 중고 세트들에 실제로 불을 붙였습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할리우드에 존재하는 7대의 테크니컬러 카메라가 모두 동원되었으며 이 화재 장면에서 소방시설 40여 대와 소방수 50여 명, 자원봉사자 200여 명을 동원하고 촬영 뒤 불을 끄는 데도 물 1900리터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남북 전쟁을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했고 멜라니의 출산을 앞두고 스칼렛이 의사를 찾아 헤매는 크레인숏도 병동이 부족해 수많은 부상병과 사망자들이 길거리에 누워 있는 이 장면에서 엑스트라 총 800명과 더미(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본뜬 마네킹) 800개를 사용하였습니다.

 

시대극으로서 의상에도 상당한 투자를 해야만 했는데 코스튬 디자이너 월터 플렁킷은 50명에 가까운 주요 배역을 위해 5천 벌이 넘는 옷을 디자인했고, 영화에서 비비안 리는 다른 옷 44벌, 클라크 게이블은 36벌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특히 플렁킷은 의상의 변화를 통해 스칼렛의 처지와 심리의 변화를 표현했는데 1부에서 오건디, 망사와 면 재질의 옷을 입던 스칼렛은 점차 부유해지면서 실크와 벨벳 소재 옷으로 바꿔 입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이유는 바로 당대에 할리우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활용해 역대 최고 수준의 엔터테인먼트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제작자인 데이비드 O. 셀즈닉의 야심찬 계획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 그와 스튜디오는 이 영화를 당대 최고의 대작을 만들기 위해 모든 걸 투자했고 영화에 사용된 의상은 무려 5천 벌이 넘고 엑스트라만 2400명, 말 1100마리를 투입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당시 할리우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력을 쏟아낸 작품으로 할리우드를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고 궁극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출발한 이후 수십 년 동안 대작영화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훌륭한 장면은 상당 부분이 큐코어가 연출한 전반부에 속해 있으며 그는 인물과 분위기를 다루는 특유의 노련한 솜씨로 영화에 장대한 서사적 스케일을 더했습니다.

 

셀즈닉이 만들어 낸 장면은 영화사에서 가장 전형적인 특성을 담고 있으며 스칼렛이 부상병을 돌볼 때 뒤로 빠지며 부상병들로 화면을 채우는 카메라, 불타는 애틀랜타의 화염을 뚫고 돌진하는 마차, 게이블이 스칼렛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관능적인 그림자 등이 그러합니다.

 

 

 

1939년의 테크니컬러 기술로 드레스는 예쁜 파스텔 색조로 표현되고 열정을 표현하는 데는 불타는 듯한 붉은색이 쓰였고 군홍보단의 카메라맨 출신이자 촬영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빅터 플레밍 감독은 스튜디오의 요구를 가장 충실히 수행하는 감독으로 평가되었으며, 그와 셀즈닉의 목표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구도와 미술, 조명을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부 특유의 억양, 관습, 예의를 재현하기 위해 원작 작가 마거릿 미첼이 추천한 전문가 수잔 미릭(Susan Myrick), 그리고 윌 A. 프라이스(Will A. Price)를 고용해 배우들이 말 끝을 길게 늘리도록 훈련 시켰는데, 덕분에 다른 작품들과 달리 개봉 후 억양 문제로 뒷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수잔 미릭 그리고 비비안 리

 

 

 

이렇듯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영화화했다는 점도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캐스팅과 연기에 대한 평가가 높았는데, 평론가 프란츠 홀러링은 비비안 리의 연기에 대해 “어떤 여배우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도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디자인된 연기로, 외모와 동작 모두에서 완벽하다”고 말했습니다.

 

원작자인 마거릿 미첼은 개인적으로 비비안 리의 스칼렛 해석에 찬성했고 특히 찬사를 받은 연기는 타라로 돌아온 뒤 저택에 침입한 북군 병사를 해치우던 장면에서 용기와 결단력을 표현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는 스칼렛에게 질투심을 느낀 레트가 그녀와 강제적으로 관계를 가진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만족감을 표현해낸 장면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외에 레트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과 애슐리 윌크스 역의 레슬리 하워드 또한 마거릿 미첼의 인물 콘셉트와 관객의 상상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매미 역의 헤티 맥대니얼은 극중에서 비비안 리 다음가는 연기라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원작 소설이 대히트를 치면서 1939년 12월 15일에 영화가 개봉되었고 2차 세계대전도 발발하기 전에 러닝타임 3시간 50분짜리 영화를 풀컬러로 제작했고, 제작비는 600만 달러를 들였는데 당시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제작비였습니다.

 

1537%에 달하는 해당 기간의 미국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1939년 당시 600만 달러는 2012년의 9800만 달러와 맞먹는 구매력을 갖습니다.

 

인플레이션 적용 기준으로만 전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며 이 수치는 재개봉 수치를 뺀 기록이고 개봉 후 85년이 지난 지금 현재 누적 관객 수는 285,660,086명으로 추산됩니다.

 

 

 

첫 개봉에서만 1억 9000만 달러 이상이며 2017년 물가로 환산하면 18억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기록입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북미에서 흥행몰이한 결과가 9억 3천 6백만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상상 이상의 기록입니다. 더불어 이후로도 재개봉으로 전세계에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추가로 벌어들이며 3억 9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26년이나 미국 및 세계 영화 극장 흥행 1위를 지켰는데 이 기록은 1965년에서야 <사운드 오브 뮤직>이 깼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리뷰 참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박스오피스의 수치도 엄청난 기록이지만, 텔레비전에서 첫 방송을 했을 때도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1976년 NBC가 이 영화를 처음 방영했을 때 미국에서 47.7%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역대 미국 시청률 8위의 기록입니다.

 

 

 

194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와 대결한 영화들의 위용은 엄청났습니다.

 

AFI 선정 역대 최고의 판타지 영화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 리뷰 참고

 

 

역대 최고의 법정 영화중 하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여러 번 개작된 할리우드 대표 고전 로맨스 영화 <러브 어페어>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감독중 하나인 존 포드가 만든 역대 최고의 서부극 <역마차>

 

 

진정한 스승의 일대기를 다룬 걸작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칩스>

 

 

특히,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인 프랭크 카프라(1897-1991)가 연출, 제작한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는 역사상 최고의 법정 영화로 평가받으며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최초로 등재된 25 작품 중 하나일 정도의 걸작입니다. 그런데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모두 패배하고 오리지널 각본상 하나에 만족해야 했는데 원작이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상을 탈 수 없었기에 겨우 수상한 것입니다.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한 해> 참고

 

이때 프랭크 카프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온 해에는 당신의 최고 걸작을 만들지 말라." 하는 명언을 남겼고, 이 명언은 1997년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타이타닉>에 밀려 수상을 거의 하지 못 한 <LA 컨피덴셜>의 감독인 커티스 핸슨이 다시 한 번 인용했습니다.

 

<타이타닉> 리뷰 참고

 

 

 

 

이 작품에서 엄청난 연기를 선보인 비비안 리는 영국 배우 최초로 1940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1940 오스카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자 비비안 리

 

비비안 리는 이 작품으로 막대한 인기를 얻었고 스칼렛 그 자체인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하지만, 연기로도 인정받는 실력파 배우가 됩니다.

 

이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 등장해 말론 브란도와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연기를 다시 한 번 보여줬으며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했습니다.

 

결핵과 양극성장애 등 건강 문제를 많이 겪었으며, 영화보다는 연극 쪽 활동이 더 많았습니다.

 

 

 

주인공 스칼렛의 하녀 역을 맡은 해티 맥대니얼(1895~1952)은 아카데미에서 첫 여우조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가 됩니다.

 

그때는 민권법이 지정되기 전이라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고 상을 탔음에도 흑인 출연진들은 시상식에 올 수가 없었는데 이때 클라크 게이블이 말도 안 된다면서 그렇게 하면 자신도 시상식 안 간다고 하는 바람에 해티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애틀란타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서도 클라크 게이블이 해티 맥대니얼 말고도 다른 흑인 배우들도 당연히 이 영화를 빛낸 배우들인데 그들을 피부색 때문에 못 나오게 하면 나도 시사회고 나발이고 안 간다고 따져서 흑인 출연진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KKK가 반발하여 게이블에게 비난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게이블은 "흑인이고 뭐고 간에 같은 영화에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고 맥대니얼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나오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안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클라크 게이블의 별명이 괜히 할리우드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결국 게이블 덕분에 시상식에 나온 맥대니얼은 소감으로 "검둥이로서 내가 처음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그걸 도와준 게이블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먼 미래에는 (흑인들이) 더 많이 올라오게 되겠죠."라고 했지만 해티 맥대니얼 이후 우피 골드버그가 사랑과 영혼의 '오다 메'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흑인 여우조연상을 받기까지 51년이 걸렸습니다.

해티 맥다니엘 이후 오스카를 수상한 흑인 여배우들

 

맥대니얼은 이후로 배우로서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며 조연으로 간간히 나오다 사라졌고 2006년 미국에서 맥대니얼을 기리는 기념 우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 58분이며 이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중 가장 러닝 타임이 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영화 자체를 1부와 2부로 나눠 중간에 휴식 시간(인터미션)을 둘 정도입니다.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지만 역시 영화에 원작의 방대함을 다 넣을 수는 없었지만 영화가 원작못지 안흥며 원작을 알고 봐도 영화가 손색없게 보일 정도로 각색이 상당히 잘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데뷔 전에 스칼렛 오하라와 레드 버틀러의 딸 역할을 제의 받은 적이 있으며 딸의 연예계 데뷔를 아직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테일러의 부모님이 거절해 무산됐습니다.

 

 

 

미국 영화 연구소 AFI에서 선정한 100대 명대사에 무려 3개의 대사가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초월 번역으로 유명한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지에서는 레트의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솔직히 말하면, 내 사랑, 그 딴 건 내 알 바 아니지)."라는 대사가 가장 유명합니다.

 

스칼렛과의 관계에 지친 레트가, 떠나는 자신을 붙잡으며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하라고요?'라며 울먹이는 스칼렛에게 작별을 고하는 이 시니컬한 대사는 AFI 선정 100대 명대사에서 1위를 차지할만큼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이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최고의 명장면 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최고의 명장면 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최고의 명장면 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중요성을 지닌 작품이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합니다.

 

영화는 남부의 낭만화된 과거와 노예 제도의 미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야하며 영화 속에서 흑인 캐릭터들은 여전히 종속적이고 하위적인 위치에 있으며, 이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인종적 편견과 사회적 불평등을 무시한 점은 문제로 지적되어야 합니다.

 

또한, 영화는 남부의 패배와 재건 시대를 그리면서도 그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남북 전쟁의 실제적인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비극과 감정선을 중심으로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짐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제공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원작 소설은 19세기 중반 당시 남부의 생활상을 잘 버무려 묘사해낸 작품이지만, 남부를 미화하고 당시 노예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각색 과정에서 이런 노골적인 묘사나 차별 요소를 거의 다 쳐냈고 영화 촬영 당시 2차 세계 대전 유대인 홀로코스트 문제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던 추세였습니다. 제작 당시에도 NAACP 같은 흑인 인권 단체와 여러 사람들이 반대하기도 했고, 셀즈닉 역시 이들의 의견을 참조해 많이 쳐냈습니다.

 

2010년대 이후 비판 의식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28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명소 오피엄 극장(Orpheum Theatre 1928년에 개관했다.)은 지난 34년간 이 영화를 여름 특선 영화제에서 꾸준히 선보였다가 '인종적 몰이해가 드러난 작품'이라는 비난이 계속되자 퇴출을 공표했습니다.

 

2018년 스파이크 리 감독은 자신의 영화 <블랙클랜스맨>의 오프닝에 바함사의 한 장면을 삽입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 바 있으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패러디를 사용해 노골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 리뷰 참고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는 2020년 6월 9일(현지시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유 콘텐츠 목록에서 삭제했습니다.

 

1939년 개봉한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을 휩쓴 명작으로 평가받지만,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백인 노예주를 영웅적으로 묘사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노예제를 옹호하고, 흑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HBO 맥스 측은 성명을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 시대의 산물이며 불행히도 당시 미국 사회에 흔했던 윤리적, 인종적 편견 일부가 묘사돼있다. 이런 인종차별적 묘사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틀린 것이며, 이에 대한 규탄과 설명 없이 해당 영화를 방영 목록에 두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영구 삭제는 아니고 HBO 맥스 측은 추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역사적 맥락에 관한 설명과 함께 콘텐츠 목록에 복귀시킬 것이지만, 영화에 별도의 편집을 가하진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HBO에서 삭제된다는 소식에 오히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이러한 논란이 오히려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아마존 TV·영화 부문 판매 순위에서 1∼4위를 석권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그 시대의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며, 특히 비비안 리와 클락 게이블의 연기는 이 영화를 전설로 만든 핵심 요소 중 하나이며 그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재조명해야 할 영화입니다.

 

인종, 성별, 그리고 역사적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여전히 그 자체로 강력한 서사적 힘을 가진 영원히 기억될 마스터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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