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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이 작품이 영화사 역대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이유

로더리고 2025. 8. 24. 14:28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

 

미국 드라마 외 154분 12세이상 관람가

 

감독 오슨 웰스

 

출연 오슨 웰스, 조셉 코튼, 도로시 커밍고어, 아그네스 무어헤드

 

 

 

 

<게임의 규칙>과 함께 현대 영화에서 가장 선구적인 작품

 

앙드레 바쟁

 

영화사에 남을 기적 같은 작품, 걸작의 수준을 뛰어넘는 작품

 

로저 이버트

 

영화 <시민 케인>이 왜 훌륭한지 3시간도 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동진

 

 

 

천재 영화인 오슨 웰스의 데뷔작인 <시민 케인>은 단순히 영화사의 이정표를 넘어, 영화라는 매체의 언어와 표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영화의 형식적, 내용적 경계를 확장한 혁명적인 시도이자,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평론가와 영화 제작자들에게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사 역대 최고의 영화입니다.

 

 

 

개봉 연도와 '최고의 영화'라는 별명 때문에 낡고 졸린 영화라 생각하기 쉽지만, 저작권이 끝난 지금에 봐도 세련되고 재미있는 영화이며 한 사람의 인생은 단순화할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로즈버드' 라는 장치와 당시로서는 독특한 서사 구조, 미장센의 대비 등 여러 서사적, 연출적 요소들로 표현해 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영화적 혁신을 이뤘습니다.

 

1940년 당시 25세였던 오슨 웰스는 이 작품의 제작, 연출, 주연을 혼자 도맡았고 이 영화는 웰스의 영화계 활동을 통틀어 아카데미상에 후보 지명, 수상을 달성해 낸 유일한 작품이며

 

전설적인 영화 음악가 버나드 허먼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합니다.

버나드 허먼과 오손 웰스

 

 

 

1940년 '뉴욕 인 콰이어러지'를 비롯, 수 많은 신문들의 발행인이었던 찰스 포스터 케인이 죽는다. 그는 당시 70세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였고 죽음 직전에는 플로리다의 대저택 제나두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생전에 많은 정치인과도 친분을 맺고 있었고, 미국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여러 얘기들에 대해 그는 "나는 현재 미국인이고 과거에도 미국인이었으며 앞으로도 항상 미국인일 것이다."라고 말로 일축하곤 했다. 잡지 편집장인 록스톤은 그의 죽음 내면의 것을 취재하고자 기자인 톰슨에게 케인이 죽기 전에 말했다는 '장미꽃 봉오리(로즈버드)'가 무슨 뜻인지 알아오라고 한다. 톰슨은 케인의 주변 인물을 샅샅이 취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작성한다. 찰스 케인은 1860년대 중반 콜로라도 뉴 살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에 있던 하숙생이 준 쓸모없는 광산에서 노다지가 쏟아져 케인 가족은 풍요함을 누리게 된다. 케인은 25살이 되었을 때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뉴욕 인콰이어러지를 인수한다. 처음 신문 발행 날 노동자의 입장에서 일해나가겠다는 케인의 야심찬 선언이 실리고, 폭로 기사들로 인콰이어러지는 발행부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1900년 케인은 대통령의 질녀인 에밀리 노튼과 결혼하고 아들 찰스 쥬니어가 태어난다. 그러나 그는 미모의 여가수 수잔 알렉산더와 사랑에 빠진다. 선거에 나선 케인은 그러나 그의 부정한 애정 행각이 발각돼 낙선한다. 그후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1918년에는 에밀리와 그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시민 케인>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며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물질주의와 소비 문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기도 합니다. 케인은 언론과 재정적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를 조작하려 했고,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의 성공을 추구하는데 다가가지만,

 

결국 그는 사랑과 인간적 관계에서 실패하고 고립됩니다. 이 영화는 물질적 성공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 않음을 증명하며, 물질주의가 인간의 내면적 공허를 채울 수 없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의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혁신성과 영화 예술로서의 깊이 있는 접근은 점차 많은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적 경험을 넘어,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영화의 언어와 영화가 전달할 수 있는 감정적, 철학적 깊이를 탐구합니다.

 

오늘날, 많은 영화 평론가들은 <시민 케인>을 “영화의 교과서”로 여기며, 후대 영화의 형식적 기법과 내러티브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특히, 이 영화는 그 비선형적 내러티브와 미학적 혁신, 그리고 심리적 탐구를 통해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깊은 철학적 담론을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시민 케인>의 중심에는 ‘로즈버드’라는 단어가 존재합니다. 이 단어는 영화 내내 여러 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언급되며, 결국 케인의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로즈버드'는 케인이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보내던,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의 상징이자, 그의 마지막 유언으로서 그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인간적 관계를 회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단순히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가 이룩한 모든 것들이 결국 한낱 공허함으로 돌아온다는 깊은 비극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로즈버드'는 또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요약하는데, 케인은 결국 물질적 성공을 얻었지만, 그 성공이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세속적 권력과 부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분리와 고립이라는 아이러니를 겪습니다. ‘로즈버드’는 그가 놓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추구하려는 그의 갈망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그가 성공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불완전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시민 케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사 구조이며 일반적인 선형적 이야기 전개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을 인터뷰와 회상, 플래시백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며, 관객은 단순히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기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그 내면이 겪은 변화를 파악하려는 관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인물의 복잡성이며 케인의 전통적인 ‘영웅’ 이미지에서 벗어나, 그의 내면적 갈등과 자아의 붕괴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를 단지 권력의 상징으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불행과 상실을 겪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냈고 이는 영화의 근본적인 주제인 ‘성공과 고립’, 그리고 ‘물질적 욕망과 정신적 공허’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촬영 순서별 디테일한 정리

 

 

 

촬영 감독 그렉 톨랜드와 협력한 오슨 웰스는 평범한 촬영 방식에서 벗어나, 깊은 심도(depth of field)를 활용하여 인물과 배경을 동시에 선명하게 담아내는 혁신적인 촬영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렉 톨랜드와 오손 웰스

 

 

이 기법은 단순한 시각적 실험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적 상태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좁은 공간에서 대면하는 인물들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압축하고, 그들의 심리적 고립과 갈등을 강조합니다.

 

 

특히, 촬영 기법인 '딥 포커스 기법'을 빼놓을 수 없으며 오손 웰스는 이러한 딥 포커스 샷을 통해 화면의 공간감을 구축하고, 롱 테이크(long take :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 기법과 함께 사용함으로써 현장감까지 더했습니다.

 

‘딥 포커스 샷’(deep focus shot)는 문자 그대로 화면의 깊은 곳까지 포커스를 맞추는 쇼트를 말하며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쇼트이지만, 초기 영화사에서 딥 포커스 기법의 등장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인물A의 모습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 A의 뒤에 위치하고 있는 벚꽃나무를 A와 함께 명료하게 담을 것인지, 아니면 A에만 초점을 맞추고 벚꽃나무는 흐리게 아웃 포커스(out of focus)로 담을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A와 벚꽃나무 모두에 초점을 맞춘다면 피사계 심도가 ‘깊은’ 것이고, 벚꽃나무를 포함한 여러 배경을 흐리게 하고 A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피사계 심도가 ‘얕은’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피사계 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감도의 광각 렌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시민 케인>의 딥 포커스 장면

 

 

또한, 영화의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선형적 전개’는 관객을 단순히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이끌지 않고, 각기 다른 목소리와 시각을 통해 케인의 삶을 다각도로 파헤치며 이는 케인의 존재가 단지 ‘거대한 성공’을 넘어서, 그가 겪은 실패와 내적 공허, 그리고 갈등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화적 성찰입니다.

 

 

 

<시민 케인>이 영화사 역대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이유

 

<시민 케인>은 시대를 앞서 간 혁신적인 영상 스타일과 순차적인 서사 구조를 파괴하고 시각적인 표현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를 표현하고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는 모더니즘적인 이야기 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느와르가 아직 제대로 장르화조차 되지 않은 1940년대 초에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어두운 인간의 본질과 내면을 비추었습니다.

 

몇몇 미국 평론가들은 이를 알아보고 “위대한 업적”이라며 극찬하였으나 황색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방해로 인한 홍보 실패로 막상 개봉 당시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개봉 당시에는 아카데미에서 7개 상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각본상만을 수상하는데 그쳤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당연히 흥행에 실패해 그렇게 영화도 잊혀지나 싶었으나, 4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고 지금은 많은 평론가들과 매체에서 최고의 걸작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영화입니다.

 

1989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 국립영화등기부에서 영구히 보존하는 영화이며 'AFI 선정 100대 영화'에서 이견이 없는 1위로 꼽혔고 평론가들과 언론들로부터 모은 데이터들을 싸그리 합산하여 순위를 매긴, 영화계의 어클레임드 뮤직이라 할 수 있는 사이트인 They Shoot Pictures, Don't They?의 역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도 마찬가지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최고의 영화'라 불리는 만큼, '왜 훌륭한가?'에 대한 답도 평자마다 다양하며 <시민 케인>이 왜 걸작인지에 대해서는, 역시 자신만의 견해가 필요할 것이며 <시민 케인>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글 <시민 케인>에 대한 극찬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영화 문법의 종합과 강렬한 시각성. 당시 절정을 향하던 몽타주와 미장센 기술을 <시민 케인>은 최적의 조합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미장센은 딥 포커스라는 신기술과 거울 이미지의 활용으로 그 가능성을 드넓혔다. 리얼리즘 배경과 표현주의 조명을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로 엮은 것 또한 극찬받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민 케인>의 세계는 리얼하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톰슨 기자는 내내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첫 신문 발행 날, 노동자의 입장에서 일하겠다는 선언에 젊은 케인이 서명할 때, 역시나 케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거울과 창문을 사용하여 한 화면 안에서 두 가지 상황이 동시에 진행되는 장면이 많다. 이 또한 미장센의 예시가 될 수 있다. 화면과 분리된 소리는 몽타주 이론의 응용이 된다.

 

둘째, 혁신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스토리텔링. 시간순의 진행을 깨뜨리고 사건을 뒤섞어 놓았으며, 이를 생각의 흐름을 따라 추리와 심리를 기준으로 정렬해 영화 스토리텔링의 혁명을 일으켰다. 또한 '로즈버드'라는 핵심 소재로 관객에게 관심을 유도하는 방식, 종국에 그 로즈버드의 정체를 몰래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 또한 호평받는 점이다.

 

 

워낙 전설적인 작품이다 보니, 어느 분야의 작품에 대해 극찬할 때 <시민 케인>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종의 밈 성격으로는 작품성이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종류의 매체에서 높은 작품성과 낮은 대중성을 가진 작품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봉준호는 <하녀>를 두고 한국 영화계의 <시민 케인>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는 영화 <더 룸>을 두고 못 만든 영화계의 <시민 케인>이라는 평을 내렸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 비디오는 단편 영화계의 〈시민 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임계에서는 2013년 명작 게임의 반열에 오른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 대해서 영화 잡지 엠파이어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너티 독이 그때까지 만든 게임들 가운데 가장 빼어날 뿐만 아니라 아주 강력한 현세대 콘솔 최고의 게임 후보로, 이는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시민 케인에 비견될 순간일지도 모르며 수십 년간 회자될 걸작으로 남을 수도 있다."라는 평을 남긴 바 있습니다.

 

 

 

<시민 케인> OST by Bernard Herrmann 

 

 

 

<시민 케인> 최고의 명장면 1

 

 

<시민 케인> 최고의 명장면 2

 

 

<시민 케인> 최고의 명장면 3

 

 

 

한국에선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유튜브에 전편이 올라와 있습니다.

 

<시민 케인> 1부

 

 

<시민 케인> 2부

 

 

 

여담

 

오손 웰스가 촬영 전에 전설적인 서부 영화 감독인 존 포드의 <역마차>를 약 40번 넘게 보며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달 동안 매일 저녁을 먹은 후, 극장을 찾아가 <역마차>를 보았고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왜 이렇게 만들었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내게 영화 학교에 가는 일과 같았다.라고 회고했다고 합니다.

 

오손 웰스는 케인 역의 젊은 시절부터 70대 노년의 모습까지 연기를 모두 맡았는데, 자연스러운 모습을 위해 분장에 공을 많이 들였으며 당시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모리스 시더먼은 웰스의 얼굴 전체를 본 따서 연구했고 얼굴 본을 뜬 동안에 소설 <악의 제국>을 다른 스태프에게 읽게 시켜 웰스에게 들려줬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의 경우, 오슨 웰스가 25살이었을 때에 찍은 영화이긴 하지만 한층 풋풋하고 어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볼살 부분을 뒤로 잡아당겼고 수잔나와의 애정 행각이 발각되고 라이벌지 기자에게 계단에서 난간을 붙잡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웰스는 3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발목에 금이 가고 2주간 휠체어에서 앉아 연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거 유세 장면에서는 다리에 철심을 대고 서있는 연기를 한 것이 언듯 보이며 노년의 경우에는 콘택트렌즈를 이용해 흐릿한 빛의 눈을 만드는 등 섬세하게 표현했고 웰스는 이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후반에 수잔나가 떠나자 상처 입고 분노하여 거칠게 방을 부수는 장면에서 손목을 다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웰스는 다른 장면을 찍을 때는 케인의 첫 부인 에밀리 역을 맡은 루스 워릭에게 이것 저것 디테일한 주문을 많이 했지만, 영화학도들이 한 번쯤 공부하고 넘어가는 그 유명한 아침 식사 장면에서는 별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웰스의 말에 따르면, 이 장면에서는 세월이 흐르면서 에밀리와 달리 괴물로 변해가는 케인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워릭이 연기한 에밀리의 초반 느낌 그대로 가주길 바랐기 때문에 이 신을 찍을 때는 크게 지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에밀리 역을 맡은 루스 워릭의 말에 따르면 오슨 웰스는 워릭에게는 젠틀하게 대했지만, 수전 역을 맡은 도러시 커밍고어에게만은 배우들과 스태프진 앞에서 공공연히 모욕을 주는 등 안 좋게 대우했는데 워릭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웰스에게 왜 그녀를 그런 식으로 대하느냐고 묻자, 웰즈는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진심으로 증오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워릭이 "감정 연기를 위해서 배우가 진짜로 학대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자 웰스는 "그녀는 배우가 아니라, 수전 알렉산더 그 자체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 그녀가 맡은 역처럼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화 후반부 수전이 케인을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연기가 놀랍도록 생생했던 것은 이 때문이지만 웰스가 커밍고어에게 한 처우를 의도하지 않은 연기 정도로 넘어가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오손 웰스는 원래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영화화하려고 했는데,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걸 알고 포기했고 대신 만든 것이 이 <시민 케인>이며 소설 <어둠의 심연>은 훗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 의해 영화화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지옥의 묵시록>입니다.

 

<지옥의 묵시록> 리뷰 참고

 

 

 

 

지금의 극찬과는 달리 당대의 황색 매체 언론계를 지배하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영화의 주인공인 케인이란 인물이 자신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여겨 온갖 방해를 놓았고, 당시 흥행에서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영화 경력을 시작하기 전 라디오 방송에서 드라마를 연출하던 웰스가 자신이 일하는 모든 라디오 방송국들의 운영권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허스트를 보며 영화의 모티브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미국-스페인 전쟁을 적극적으로 선동한 행적을 대놓고 풍자했으나 허스트는 케인과 달리 기득권에 비판적인 좌파 성향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194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은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게 돌아갔고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갔으나 각본상만을 수상하는 데 그쳤는데,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이는 최악의 아카데미 시상식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어 '최악'이라는 평가는 희미해지고 있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도 역시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충분히 아카데미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수작인데 단지 비교 대상이 하필 시민 케인이기에 저런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2020년 각본가 허먼 J. 맨키비츠의 일대기를 다룬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작품 〈맹크〉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고 맨키비츠 역을 맡은 배우는 게리 올드만입니다.

 

이동진은 영화 <시민 케인>의 각본가 허먼 J. 맹키위츠의 실화를 다룬 전기영화<맹크> GV에서 "영화 <맹크>를 이해하는데 시민케인을 먼저 보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굳이 시민케인을 보지 않아도 맹키위츠라는 인물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는 없다."는 입장과 동시에 〈시민 케인〉을 두고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부르다 보니 예비 관객들이 관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그러한 찬사나 칭송 때문에 보는 것을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는 로즈버드(장미 꽃봉오리)는 허스트가 동거녀이자 여친이었던 영화배우 매리언 데이비스의 신체 부위를 은밀하게 부르는 말이라는 루머가 있었고 1989년 "오슨 웰스를 기억하며"를 출간한 작가 개리 텔리스는 허스트가 실제로 데이비스의 특정 신체 부위를 "로즈버드"라고 부른 것은 맞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본을 쓴 허먼 맹키위츠는 "로즈버드"의 실제 의미에 대해서는 언제나 비밀스러웠고 한 가지보다는 여러 가지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기 작가 리차드 메리먼과 패트릭 맥길리건에 따르면 맹키위츠가 캔터키 더비 경마장에서 돈을 걸어 이긴 말 이름 “올드 로즈버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그 이름의 의미처럼 극중 케인의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셉션>에서 피셔의 바람개비는 로즈버드의 노골적인 오마주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영화의 소품이었던 로즈버드 썰매를 1982년 6월, 60,500달러(당시 한화 약 6천9백만 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2021년 9월 30일 개관한 아카데미 박물관(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에 기증, 박물관 가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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